캐나다에 살다 보면, ‘여기는 같은 나라지만, 뭔가 다르다’는 느낌을 주는 곳이 있습니다. 바로 퀘벡인데요. 프랑스어를 쓰고, 유럽풍 건축물이 도시 곳곳을 채우며, 문화적으로도 독자적인 흐름을 가진 주. 그런 퀘벡이 1년 중 가장 뜨겁게 들썩이는 날이 바로 6월 24일, 생장밥티스트데이(Saint-Jean-Baptiste Day)입니다.
이 날은 퀘벡 사람들에게 단순한 공휴일이 아닙니다.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정체성, 자긍심, 공동체 정신이 집약된 퀘벡의 ‘사실상 국경일’이죠.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되어, 음악, 춤, 퍼레이드, 그리고 불꽃놀이로 가득한 이 날은 퀘벡을 이해하는 가장 생생한 창이기도 합니다.
생장밥티스트데이란?
‘Saint-Jean-Baptiste’는 영어로 Saint John the Baptist, 즉 성 요한 세례자를 뜻합니다. 원래는 기독교의 축일로,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하지(夏至) 직후에 전 세계 가톨릭 지역에서 기념되던 날입니다. 그러나 퀘벡에서는 1834년부터 이 날이 전혀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게 됩니다.
1834년 몬트리올의 언론인 겸 정치 운동가 루돌프 뒤베르네이(Rudolphe Duvernay)는,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문화와 언어,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체성 고양의 날로 ‘생장밥티스트데이’를 기획합니다. 당시만 해도 영국령이었던 캐나다 사회에서, 프랑스계 커뮤니티는 점차 소외되고 있었기 때문이죠.
그 이후 생장밥티스트데이는 점차 퀘벡 전역으로 확산되었고, 1977년 퀘벡 주정부에 의해 공식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종교적 의미를 넘어선 퀘벡 민족주의 상징일로 자리 잡았습니다.
퀘벡의 ‘국경일’, 캐나다 속 또 다른 나라
흥미로운 점은, 생장밥티스트데이가 많은 퀘벡 사람들에게 ‘캐나다데이(7월 1일)’ 보다 더 강한 소속감을 준다는 사실입니다. 그리고 이는 단순한 지역감정이 아닌,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둔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.
- 캐나다데이는 캐나다 연방 창립을 기념하는 날인 반면,
- 생장밥티스트데이는 프랑스계 커뮤니티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기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.
이 때문에 퀘벡에서는 두 날을 모두 기념하기보다는, 생장밥티스트데이에 더 큰 열정을 쏟는 분위기랍니다. 이는 곧 ‘퀘벡은 캐나다 안에 있지만, 그저 캐나다의 일부는 아니다’라는 정체성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.
6월 24일, 퀘벡의 분위기는?
이 날, 퀘벡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전혀 다릅니다. 아침부터 도시는 축제의 분위기로 들썩이고, 대부분의 관공서, 기업, 상점이 문을 닫습니다. 곳곳에 퀘벡 플래그(플뢰르 드 리)가 걸리고, 시민들은 파란색과 하얀색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죠.
몬트리올
- Place des Festivals, Parc Maisonneuve, Quartier des Spectacles 같은 중심지에서는 수만 명이 모여 음악과 공연을 즐깁니다.
- 퀘벡 출신 유명 가수들이 참여하는 무료 대형 콘서트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입니다.
- 밤이 되면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축제는 절정을 향합니다.
퀘벡시티
- Plains of Abraham 공원에서는 가족 단위의 참여형 프로그램과 함께 전통 무용, 민속 음악, 지역 특산물 체험 부스가 열립니다.
- 퍼레이드는 퀘벡의 역사적 인물, 상징적 장면을 테마로 한 창의적인 플로트가 등장합니다.
이 외에도 도시 곳곳에서 커뮤니티 별로 작고 큰 행사가 열리며,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광장이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.
생장밥티스트데이 vs. 캐나다데이 한눈에 보기
항목 | 생장밥티스트데이 | 캐나다데이 |
---|---|---|
날짜 | 6월 24일 | 7월 1일 |
지역 | 퀘벡주 중심 | 캐나다 전역 |
법적 공휴일 여부 | 퀘벡주 공식 공휴일 | 연방 공휴일 |
기념 대상 | 성 요한 세례자 / 프랑스계 캐나다인 | 캐나다 연방 창립 (1867년) |
문화 행사 | 콘서트, 퍼레이드, 민속 공연, 불꽃놀이 | 퍼레이드, 축제, 불꽃놀이 |
상징 색 | 파랑, 하양 (플뢰르 드 리) | 빨강, 흰색 (캐나다 국기) |
정치/문화 성격 | 퀘벡 민족주의, 문화적 독립 강조 | 국가적 통합과 정체성 강조 |
마치며
캐나다의 여름은 아름답고 축제로 가득하지만, 6월 24일 퀘벡에서 열리는 생장밥티스트데이만큼 독특하고 깊은 의미를 담은 축제는 드뭅니다.
문화와 역사의 흐름이 어우러지고, 현대적인 즐길 거리와 정체성의 상징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날은 퀘벡을 여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.
혹시 이 시기에 퀘벡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, 단순히 ‘행사 있는 날’로 보지 말고, 이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보세요.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, 퀘벡 시민들과 함께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그들의 열정 속에 몸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요?